<논어 풀이와 해석, 그리고 나의 의견>내가 어디에 있는가 보다 내가 무엇을 하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논어 미자 18편 2장 1절

· 柳下惠爲士師, 三黜.
· 人曰子未可以去乎?· 曰直道而事人, 焉往而不三黜? 枉道而事人, 何必去父母之邦?· 노나라 대부 유하혜는 刑을 집행하는 관리를 맡았지만, 세 번이나 파직당했다.|· 이를 보고 어떤 사람이 유하혜에게 "세 번이나 쫓겨났으면서 왜 다른 나라로 가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이에 유하혜가 대답했다. "道를 바르게 하고 사람을 섬기면 어찌 다른 나라에 간들 세 번 안 쫓겨나겠는가? 道를 굽히고 사람을 섬길 바에 부모의 나라를 버릴 필요가 있겠는가?"

 

#.여기서 유하혜의 답은 반문이다.

유하혜가 살고 있던 시대에는 춘추전국시대, 시대가 어지럽고 도의식이 땅에 떨어져 선과 악을 구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흐트러진 시대였다. 때문에 유하혜는 도를 올곧게 하여 그에 따라 백성을 구하고 윗사람을 섬기는 관직에 있다 하더라도 도의식을 잃은 시대에 그의 행동과 사상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세 번이나 쫓겨났다. 즉 권고사직, 짤린것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속담이 비유될 수 있을 것 같다. 그 어지러운 세상에서 모난 돌은 直道하는 행동이니까 말이다.

이미 노나라에선 선생(유하혜)의 능력을 발휘할 곳이 못되는데 왜 3번이나 짤리면서도 이곳에 있으십니까? 나른 나라에 가시면 선생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고 인정받아 쫓겨나지 않으실 겁니다. 하며 어떤 사람이 물은 것이다. 해외취업, 이민 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노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도의식을 잃은 건 매한가지이다. 때문에 내가 다른 나라에 가서 도를 곧게 지킨다 할지라도 쫓겨나는 건 매한가지다. 이미 도를 잃었는데 거기다 부모의 나라까지 잃게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것이다.

道가 사라진 이 노나라에서 관직에 오르기 위해서는 그에 맞게 나도 도를 잃어야 관직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고대에서는 선비, 학자의 임무였기 때문이다. 그까짓 거 안 하면 그만이지.. 하면 자신의 사상을 펼쳐 정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요즘의 정치와 고대의 정치의 의미와 목적은 다르다.)할 수 있다. 어차피 도를 잃은 상태로 관직에 나가야 하는데 굳이 부모의 나라(노나라)를 버려가면서까지 할 필요가 없다면서 반문, 반대한 것이다.

 

#. 논어 미자 편은 당시 혹은 이전 현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공자의 세상에 대한 처세에 관한 현인들의 사상이 담겨있다. 공자는 일생동안 無道理한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도를 지닌 현자, 자신을 중용해 줄 賢君을 찾았다. 혹여 중용되었다 하더라도 어떤 행동과 일화를 보고 도가 없다 판단이 되면 지체 없이 그곳을 떠나 버렸다. 맹자처럼 역성혁명을 하든 임금을 바꾸든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지 않고, 그저 상황과 사람과 나의 생각이 합일되기만을 바라는 공자는 난 참 싫다.(그래서 영화 공자를 참으로 어거지로 봤다..) 그러나 맹자 또한 일생을 주유하며 다니긴 마찬가지였다. 맹자를 받아준 나라는 노나라 하나였으니까 말이다.

유하혜는 현자로 칭해진다. 하지만 공자와 다르게 임금을 섬기기를 가리지 않았다. 자신의 뜻에 맞는 때를 기다리며 어떤 군주라도 섬겼으며, 자신의 지조를 유연하게 바꾸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현자로 칭해진다. 지금 시대에서는 공자보다 유하혜의 처세술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상사가 거지 같아도, 야근을 밥 먹듯(제때 밥을 못 드시는 분들도 계시니.... 죄송..) 해도, 매번 시험에 낙방을 해도, 연애를 할 때마다 차이기만 해도, 벌리는 돈은 없는데 내야 하는 돈은 많아지기만 하고, 맨 밑에서 죽어라 나라살림 키우고 있지만 맨 위에서 죽어라 하고 나라살림 갉아먹고 빵구만 내고 있는 이러한 실정에도 이 나라를 지켜야 하니까 내 나라니까. 우리 대한민국민이 지켜낸 만들어낸 나라니까 맨 밑의 우리들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

올곧은 자신의 지조와 신념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나, 그에 맞지 않는다며 자신이 맞추고 변화시킬 수 없다며 자신의 뜻을 굽혀 그 세상, 그 조직에 적용시키는 융통성 없이 평생을 떠돌아다니기만 하는 공자 같은 인물을 요즘 시대에는 뭐라고 불러야 하나?

 

#. "넌 사대 출신에 유학파이니 어디나 갈 수 있겠다~ 뭐가 걱정이야~"

"중국에서 취직하지 뭐하러 들어왔어?" 나에게 모든 지인들은 이런 식으로 말을 했다. 내 조건이 나쁘지 않은 건 나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도 공자와 같은 생각을 하였다. 내가 갈만한 곳으로 갈 거다. 당연한 거 아니야? 저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결국, 전전긍긍의 끝에 어디든 가야 한다.라는 방황 끝에 안정을 찾았다. 하나, 곧 나왔다. 그곳에서 일을 하면서 진정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直道하기 위한 준비시간이었다. 우리 개개인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 당연한 것 아닌가? 한 나라의 대표도 하기 어렵다. 하물며 개인이? 흐르는 시간과 변하는 세상을 내 기준에 맞춰 변화시키는 건 머릿속에서만 가능한 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속에서 나를 맞춰 변화시키는 것. 나의 이상을 펼칠 시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줄 누군가를 찾기보다는 누군가에게 내 인정을 인정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내가 어디에 있는가 보다 내가 무엇을 하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